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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사의 현실 [시신인수 거부] - 유품정리사 / 특수청소부 에피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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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5-12-08 20:21 조회21,93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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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구질구질 내리는 6월의 마지막 주
새로 이전할 사무실을 알아보러 여기저기 돌아다니던 중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아. 스위퍼스죠?"
"여기 세입자가 죽어서요."
"청소하려는데 형사님이 여기 전화번호를 가르쳐 주던데 지금 바로 올 수 있나요?"


다급한 목소리의 건물주 아주머니의 연락을 받고 같이 일하는 친구와 함께 현장으로 출발하였다.
이동 중 창문을 조금 내리고 담뱃불을 붙이는 친구가 말을 꺼내었다.


"아.... 비 와서 일하기 싫은데...."
"견적은 잘 불렀냐?"


"몰라. 가서 봐야지."
"비 와서 작업이 하루 더 늘어날 것 같은데 어떨지 모르겠네."


나는 보통 작업을 며칠간 진행한다.
지금까지 일을 해본 결과 하루 만에 작업을 끝낼 경우 시신부패악취가 완벽하게 제거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작업기간을 넉넉하게 책정한다면 대부분의 시신부패악취 제거가 가능하며 세심한 곳까지 집중할 수 있기에 며칠간 작업을 진행하는 것을 지향하고 있다.

비가 오는 날에는 작업의 속도가 더디어지고 높은 습도와 함께 공기의 흐름이 원활하지 않아 시신부패악취가 집안에 계속 남아 있는 경우가 있어 작업이 기존 일정보다 늘어나는 경우가 있다.
이는 곧 견적 상승의 요인이 되기때문에 의뢰인 입장에서는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비가 오는 날에는 작업이 꺼려지는 것이 사실이다.





현장에 도착하니 건물주는 이미 우산을 쓴 채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건물주와 인사를 나누었고 건물주는 나에게 열쇠를 건네주었다.


"일단 올라가서 한번 보고 와봐요."
"3층 올라가자마자 정면에 있는 방이에요."


1980년대에 지어진 것 같은 낡은 건물
당장에 철거를 하더라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그런 건물이었다.
계단을 한걸음 한걸음 올라갈 때마다 다리가 무거워졌다.


"아... 계단 더럽게 높네 진짜."
"야. 벌써 지친다 날씨도 더럽고."


친구는 비가 오는 날 일을 해야 돼서 그런지 불평 섞인 말을 건넸다.


문앞에 다다르자 시신부패악취가 문밖으로 흘러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작업화에 위생덧신을 착용한 후 문을 열자 방안에는 혈흔, 부패액이 스며들은 침구류와 함께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수천 마리의 파리 고치(번데기)가 눈에 들어왔다.
파리 유충(구더기)은 전혀 보이지 않았고 파리 고치만 군집을 이루고 있던 것으로 보아 고인이 사망 후 장기간 방치되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방안을 여기저기를 확인하기 위하여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바삭바삭' 거리며 부서지는 파리 고치의 껍질들이 여기저기 휘날리기 시작하였다.
5평 남짓한 방안에는 2톤 분량의 세간살이가 가득 차있었으며 현장 확인 후 다시 밖으로 나가 건물주와 상담을 진행하였다.


"잠깐만요."


나와 얘기를 나누던 건물주는 한마디와 함께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
"아~ 받지를 않네~"
"후우~"


건물주는 깊은 한숨과 함께 다시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이에 나는 궁금증이 유발되었다.


"어디에 전화를 거시는 거세요?"


"아니. 아들한테 전화하는 건데 계속 안 받아요."


​건물주가 전화를 계속 걸었던 곳은 고인의 아들이었다.
하지만 아들이 계속 전화를 받지 않자 건물주는 고인에 대한 이야기를 풀기 시작하였다.





고인은 사망 후 방치된지 두 달 만에 발견이 되었으며 최초 발견 당시 시신이 녹아서 시커멓게 변한 상태였다고 한다.
시신 수습 후 경찰 조사 과정에서 일주일 만에 아들과 연락이 닿아 고인이 살던 집안의 정리 문제와 관련된 대화를 시도하였지만 아들은 무관심으로 일관하였다고 한다.

아들은 13년 동안 아버지의 얼굴 한번 못 보고 살아왔으며 어머니와도 이혼한 상태였기 때문에 본인은 고인과 완전히 무관한 사람이라고 주장하였다고 한다.
이런 가족 관계 유지로 인하여 아들은 아버지의 시신인수를 거부하였으며 이에 고인은 무연고사망자로 구분되었다고 한다.
또한 아들은 건물주에게 아버지가 살던 집의 보증금으로 알아서 집안을 정리하라고 건물주에게 통보한 상황이었다고 한다.





이런 얘기를 나누는 와중에도 건물주는 계속 아들에게 전화 통화를 시도하였지만 아들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하지만 몇 분 후 아들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예~ 여기 3층 아버지 돌아가신 집 건물주인데요."
"오늘 아버지 유품을 전부 정리를 하려고 해요."
"근데 아드님이 오셔야 돼."


겨우 통화 연결이 된 건물주는 약간 높아진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이때 수화기에서 아들의 목소리가 전해져 들려왔다.
 

"왜요?"


아들의 감정 없고 성의 없는 답변 때문인지 건물주의 표정은 순식간에 변하였다.
 

"아! 왜요가 아니지!!!!"
​"일단 와서 아버지방 정리하는 것을 봐야 될 거 아냐!!!!"


건물주는 격앙된 목소리로 아들을 호되게 나무랐다.
하지만 아들은 별다른 반응 없이 끝내 아버지의 죽음을 외면하였다.
통화를 끝낸 후 건물주는 한숨을 쉬며 우리에게 한마디 건넸다.


"그래도 잘났든 못났든 자신을 낳아 준 부모인데.... 나이 서른이면 그 정도는 알 텐데...."
"그냥 알아서 진행해 주세요...."





건물주는 씁쓸한 말을 뒤로한 채 계단을 내려갔고 우리는 유품정리를 시작하였다.
침구류는 이미 변사체 혈액, 부패액이 스며들어 갈색으로 변한 상태였으며 베개에는 머리카락과 피부조직이 눌어붙어 있었다.
바닥에는 송장벌레, 딱정벌레 및 정체를 알 수 없는 은색의 빛이 감도는 절지동물이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었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오염된 부분을 먼저 제거한 우리는 집안의 물건들을 정리해 나갔다.
비가 구질구질 내리는 날씨였기에 보호복과 보호장갑 안은 이미 땀으로 절어있는 상태였으며 공기의 흐름이 원활하지 않아 시취 및 먼지가 방안에 맴돌았다.

방안의 물건들을 하나하나 정리하다보니 여기저기에 통장, 도장 같은 재산적 가치품과 사진 같은 정서적 유품이 발견되었다.
통장은 10개 정도가 발견되었는데 통장 사이사이마다 카드가 꽂혀있었고 금액은 전부 합하여 약 1500만원 가량 정도 찍혀있었다.

어느 정도 정리가 끝난 후 휴식을 취할 겸 통장, 도장, 사진을 들고 밖으로 나가 건물주를 찾았다.
나는 통장, 도장, 사진을 건물주에게 보여주면서 아들에게 연락하여 이것들은 전달하여야 될 것 같다고 말하였다.


"자식새끼 같지도 않은 놈 좋은 일 시켜서 뭐 하려고?"
"그냥 전부 잘라서 버려버리지 그래요?"


건물주는 통장과 도장을 아들에게 건네준다는 것에 상당한 불만을 표하였다.
 

"어차피 사망진단서하고 가족관계증명서 같은 서류를 들고 가면 고인의 재산상황을 전부 알아낼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시신인수 거부와 재산상속은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에 상속이 가능할 것이고요."


나는 내가 아는 상식선에서 답변을 해주었다.


"아니. 지 애비 시신인수도 거부한 놈인데 이 아저씨 돈은 그대로 아들이 가져간다고?"
"무슨 법이 그래?"
"시신인수 거부하면 재산도 못 받게 해야지!!"
"하~ 참~"


건물주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까와 같이 몇 번의 통화 시도 끝에 아들과 연결 되었다.


"어. 저기. 방 정리하다가 통장하고 도장이 나왔어."
"와서 가져가요."


건물주는 아들과 몇 마디 나눈 후 전화를 끊은 뒤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우리를 쳐다 보고 피식 웃으며 한마디 했다.


"나참. 택시 타고 바로 온다네."
"아무리 전화해도 오지도 않던 놈이....."





통장, 도장, 사진을 건물주에게 전달하고 우리는 다시 현장에 진입하여 작업을 진행하였다.

한 30여 분이 지났을까....
건물주가 우리를 불렀다.
 

"어. 저기 아들 왔다 갔는데 통장하고 도장만 가져갔어요."
"이거 사진은 버려달래요."
"어떻게 통장하고 도장만 쏙 가져가냐...."


여러모로 허탈해하는 건물주를 보고 내가 한마디 하였다.


"뭐. 이런 경우 자주 있어요."
"크게 신경 쓰지 마세요."





작업은 밤늦게까지 진행되었고 9시가 넘어서야 근처 식당에서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이미 동네에는 고인이 고독사한 소문이 쫙 퍼진 상황이었기 때문에 식당 주인은 별 거리낌 없이 우리에게 고인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고인이 이 동네로 이사 올 당시 고인은 뼈가 드러날 정도로 삐쩍 마른 상태였으며 이미 지병이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고 한다.
또한 매일 저녁 어묵, 토스트, 소주를 사들고 집으로 올라갔다고 한다.
식당 주인이 "아저씨는 어묵만 먹고살아요?"라고 물어 볼 때마다 고인은 "밥맛이 없어요...."라고 대답할 뿐이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고인이 고독사하는 날까지 가족을 만나는 모습은 단 한 번도 볼 수 없었다고 한다.


나는 건물주 및 식당 주인의 말을 듣고 고인은 가족관계의 단절, 혼자 사는 외로움, 지병, 알코올 중독으로 인하여 고독사 한 것으로 단정 지었다.
이는 50대를 전후로 일어나는 고독사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작업은 며칠 더 진행되었고 사진은 다른 물건들과 함께 폐기처리 되었다.
건물주는 마무리 된 현장을 확인한 후 우리에게 대금을 전달하며 말했다.


"수고했어요."
"젊은 친구들이 좋은 일하네 그려."


'젊은 친구들이 좋은 일하네'
이 대사는 현장마다 의뢰인들에게서 자주 듣는 말이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이 대사에서 별다른 감흥이 오지는 않는다.


"사업인데요. 뭐."
"주변에 또 이런 일이 발생하면 연락 주세요."


나는 건물주에게 명함을 건네며 인사를 나눈 후 현장에서 철수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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