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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사의 현실 [20대 무연고사망자] - 유품정리사 / 특수청소부 에피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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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4-11-09 20:51 조회49,41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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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유품정리 의뢰를 하려고 하는데요."
"전 고인의 채권자입니다."​


2013년 초여름
유품정리 의뢰가 들어왔다.

이상한 것은 유가족도 건물주(집주인)도 아닌 고인의 채권자가 의뢰를 하였다.
유가족, 건물주(집주인) 말고 가끔씩 관공서나 관리사무소에서 연락이 오는 경우가 있기는 했으나 고인의 채권자에게서 연락이 오는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의뢰인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고인은 임대아파트에 혼자 거주하는 20대 젊은 여성으로서, 집안에서 약을 먹고 자살을 하였다고 한다.
집안의 유품정리를 위하여 경찰 및 임대아파트 관리사무소를 통하여 고인의 유가족이 있는지 여기저기 수소문을 해보았지만 유가족은 단 한 명도 찾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결국 고인은 무연고사망자로 구분이 되었으며 고인에게 대출을 해준 채권자가 책임자로서 유품정리를 의뢰한 것이었다.


​"집안에 있는 가전제품들은 전부 매입 가능한가요?"
"유품정리 비용을 최대한 줄여야 됩니다."​


고인이 빚을 지고 세상을 떠난 상황이라 의뢰인은 집안에 있는 가전제품들을 전부 당사가 매입해서 견적을 낮춰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나는 가전제품 매입을 잘 하지 않는다.
옛날과는 달리 현재의 가전제품들은 생산력이 높고 신제품 출시가 잦아 값어치가 금방 하락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의뢰인에게 가전제품은 집안에 남겨 놓을 터이니 중고가전 매입업체에 판매하라고 말하였지만 의뢰인은 한 번에 정리하기를 원해서인지 나보고 해결해줄 것을 계속 부탁하였다.
이에 나는 다음날 현장을 보고 결정하겠다고 말을 전한 뒤 통화를 종료하였다.





다음날 현장에 도착하여 관리사무소 직원과 함께 현장에 진입하였다.
집안은 시신 수습 후 두 달 동안 방치되어 있었으며 어지러운 상태였다.

유품정리 전에 무리가 따르는 부분이 있었는데 현장에는 고인이 기르던 반려견이 있었다.
골든 리트리버였다.
관리사무소 직원의 말을 들어보니 반려견을 유기견 보호 센터에 보내려고 하였지만 보호 센터에서는 유기견이 아니라는 이유로 받아주지를 않았다고 한다.
​반려견은 두 달 동안 좁은 곳에서 혼자 지낸 탓인지 정서적으로 매우 불안한 상태였다.
(반려견이 죽지 않기 위하여 관리사무소 직원들이 매일 먹이를 공급해 주었다.)


나는 관리사무소 직원을 쳐다보며 얘기를 꺼냈다.


"하하...."
"개가 있다는 말은 못 들었는데...."
"개는 어떻게 하실 건가요?


"그쪽에서 직접 알아서 처리하셔야죠."


​관리사무소 직원은 무뚝뚝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관리사무소 직원의 언행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나는 언짢은 웃음을 지으며 의뢰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 예. 사장님."
"여기 개가 있던데요."
"아니 개가 있다는 말씀은 안 해주셔서.... 좀 난감하네요...."
"​관리사무소 직원분은 저보고 알아서 처리하라는데.... 이거 뭐 어떻게 하실 건가요?"


나는 의뢰인에게 당황한 듯한 말투로 말을 전했다.


"에이~ 직접 알아서 처리하셔야지."
"마음대로 해결하세요."


하지만 의뢰인 또한 나보고 반려견을 알아서 처리하라고 말할 뿐이었다.


"아니. 지금 두 분 다 저보고 알아서 처리하라고 말씀하시는데 저도 어떻게 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냥 철수하겠습니다."


​나는 반려견 때문에 유품정리를 진행하기에 여러모로 애매한 감이 있어서 그냥 철수한다고 말을 전했다.


"아~ 좀 어떻게 안되겠습니까?"
"이미 몇 군데 문의했었는데 전부 그냥 돌아가서 그래요."
"좀 부탁드립니다."





의뢰인도 반려견 때문에 여러모로 난감한 상황이었나 보다.
의뢰인의 계속된 부탁에 나는 일단 해결 방법을 모색해 보겠다는 말을 전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후 친척, 친구, 지인들에게 연락하여 반려견을 맡아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을지 알아보았다.
여기저기 통화한 끝에 반려견을 맡아 주겠다는 사람이 나왔는데 정년퇴직 후 서울 근교에서 작은 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친척 할아버지가 반려견을 맡아 주겠다고 한 것이었다.
이에 나는 곧바로 의뢰인 및 관리사무소 측에 반려견을 맡아줄 사람이 나타났다는 사실을 알린 후 반려견과 함께 농장으로 출발하였다.


한 시간 정도의 이동 끝에 농장에 도착하자 친척 할아버지가 우리를 맞아주었다.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반려동물을 키워본 적이 없어서 잘 몰랐는데, 친척 할아버지는 반려견의 상태를 보더니 코는 하얗고 눈에는 충혈 및 혹이 올라와 있고 비만인 것으로 보아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을 것 같다고 말을 하였다.
​나는 친척 할아버지에게 반려견의 대한 대략적인 정보를 알려준 후 인사와 함께 다시 현장으로 출발하였다.





현장에 도착하여 유품정리 준비를 마친 뒤 곧바로 작업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관리사무소 직원이 현장에 왔으며 우리에게 무리한 요구를 제시하였다.

관리사무소 직원은 유가족이 나타날 수도 있으니 확실하게 해야 된다며 집안에 있는 모든 물건들을 종류별로 하나하나 펼쳐서 사진을 찍고 수량을 파악해 놓을 것을 요구하였다.
보통 무연고사망자 현장의 경우 집안 전체적인 사진을 각도별로 찍어 놓는 것이 통상적인데 이런 식으로 세세하게 요구하는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나는 관리사무소 직원에게

"이미 그렇게 유가족이 있는지 수소문을 하였는데도 연고자가 없어서 무연고사망자로 구분된 고인인데 이제 와서 유가족이 나타날지 모른다고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그리고 최종 책임자는 의뢰인인데 관리사무소 측에서 이렇게까지 요구 할 필요가 있을까요?"​
"증거자료로는 집안 전체적인 상황을 여러 방향으로 사진만 찍어놓아도 충분할 것입니다."

라고 말하였지만 관리사무소 직원은 요지부동이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의뢰인에게 전화하여 상황을 설명하였다.


"아. 예. 사장님"
"지금 현장에 도착해서 유품정리를 하고 있는데요."
"관리사무소에서 집안에 있는 물건들을 하나하나 펼쳐서 사진을 찍어 놓고 수량을 적어 놓으라네요."
​"저희가 이렇게 하려면 작업 기간이 하루, 이틀은 더 늘어날 것 같고 거기에 따라 인건비도 올라갈 수밖에 없는데 어떻게 할까요?"​


"아니, 그딴 쓸데 없는 짓을 왜 해요?"


"그러게요."
"제가 봐도 집안 전체적인 사진만 찍어 놓으면 될 것 같은데 관리사무소에서 자꾸 이렇게 요구하네요."


"못한다고 하세요."
"방금 말한 것처럼 집안 전체적인 사진만 찍어도 되겠구먼."
"왜 헛돈 나갈 짓을 하는 거야?"​


의뢰인의 반응은 내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솔직히 펜이 몇 자루인지, 책이 몇 권인지, 가방이 몇 개인지 일일이 펼쳐서 사진을 찍고 수량을 파악해 놓는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어리석은 짓 같았다.

나는 전화를 끊고 관리사무소 직원에게 다가가 나의 의견과 의뢰인의 의사를 전달하였다.
하지만 관리사무소 직원은 좀 전과 같이 여전히 요지부동이었다.

이에 나는 다시 의뢰인에게 전화를 걸어 관리사무소 측의 요구를 전달하였지만 의뢰인 또한 본인의 의사를 전혀 굽히지 않았다.
​상황을 지켜보니 답이 나오지 않을 것 같다고 판단된 나는 그냥 철수할 테니 다른 업체를 알아보시라고 의뢰인 및 관리사무소 측에 통보한 후 현장을 떠났다.





며칠 뒤 의뢰인에게 다시 연락이 왔다.
의뢰인은 본인의 의사대로 유품정리를 진행하기로 관리사무소 측과 합의하였다면서 우리에게 다시 유품정리를 의뢰하였다.

다음날 현장에 도착하여 유품정리를 시작하였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현장에 주변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하였다.
이 사람들은 현장에 들어와 쓸만한 물건들을 이것저것 집으며 가져가도 되냐고 나에게 물어보았다.


여담이지만 무연고사망자일 경우에는 유가족이 없기 때문에 유품정리를 하면 주변 사람들이 몰려와서 이것저것 가져가려고 하는 경향이 많다.
특히 고령층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임대아파트(주공아파트)나 낙후된 동네에 이런 일이 자주 발생한다.

일단 이런 사람들에 대한 당사의 기본적인 원칙은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이다.
무연고사망자 일지라도 일단 건물주, 집주인 등의 책임자가 있는 상황이고 쓸 만한 물건을 한 사람에게 줘버리면 그 이후에 본인도 달라면서 사람들이 몰려들기 때문에 작업의 진전이 전혀 되지 않는다.

이로 인하여 무연고사망자일지라도 의뢰인의 허락이 있지 않는 한 고인이 사용하던 물건들은 절대로 타인에게 넘기지 않는다.
아무튼 우리가 최대한 조용히 유품정리를 진행하려고 해도 이미 무연고사망자 집이라는 소문이 나있는 상황이라면 유품정리 현장에 무작정 들어오는 사람들로 인하여 애를 먹는 경우가 많다.





이집 같은 경우에도 유품정리 현장에 한 할머니가 들어오더니 우리를 보며 말했다.


"내가~ 이 집에 반찬도 여러 번 가져다주고~ 친하게 지냈어~"
"에고~ 불쌍해라~"


할머니는 유품정리 현장을 두리번거리더니 선풍기를 집어 들며 말했다.


"이거는 쓸만한 거 같은데~"
 

그리고서는 선풍기를 들은 채 집밖으로 나가려고 하였다.


"할머니!!"
"그거 내려놓으세요."
"이거 다 주인 있는 물건들이에요."
"그렇게 막 가져가시면 안 돼요."


집 밖으로 나가려는 ​할머니를 막아세우니 할머니는 화가 났는지 선풍기를 바닥에 내팽개치듯이 내려놓고 혼자서 중얼중얼 거리면서 집 밖으로 나갔다.





현장이 조용해진 우리는 다시 유품정리를 이어나갔다.
하지만 얼마 뒤 40대로 보이는 한 남성이 집안으로 들어오더니 LCD TV를 무작정 가져가려고 하였다.
이에 나는 한숨을 쉬며 또 다시 그 남성을 막아세웠다.


"누구신데 TV를 가져가려고 하시나요?"


"여기 죽은 애 삼촌입니다."

"삼촌이요?"
"친삼촌 맞으신가요?"
"유가족을 못 찾았다고 들었는데요?"

"아. 친삼촌은 아니고.... 그냥 친한 삼촌입니다."
"제가 조카처럼 잘 대해줬어요."

이 남성은 대화를 하는 와중에도 계속 TV를 들고 막무가내로 가져가려고 하였다.


"지금 고인이 빚을 지고 자살해서 현재 이 집 물건들의 소유권은 채권자가 가지고 있어요."
"유품정리도 채권자가 의뢰한 것이고요."
"TV를 가져가실 거면 두 분 통화 연결을 시켜드릴 테니 합의를 보세요."

나는 이 둘의 통화를 연결해주었다.
이 남성은 자신이 고인에게 삼촌처럼 잘 대해줬기 때문에 LCD TV는 본인이 가져갈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였고 의뢰인은 그 유품정리 현장에 대한 모든 책임은 본인에게 있으니 집 안에 있는 물건들을 함부로 가져갈 경우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주장하였다.
서로 간의 의견이 충돌하였는데 이 남성은 의뢰인에게 밀리는지 언성을 높이기 시작하였다.
​5분여 간의 통화 끝에 이 남성은 씩씩거리며 휴대폰을 나에게 돌려주면서 말했다.


"이 자식 내 눈앞에 있었으면 죽었어!!"

나는 그저 무표정으로 이 남성을 쳐다 보았고 이 남성은 외마디와 함께 빈손으로 돌아갔는데 그 이후 두 번 다시는 현장에 찾아 오지 않았다. ​
이외에도 항아리를 가져가려는 할머니, 옷을 가져가려는 아주머니 등 여러 사람들이 현장에 들어왔지만 모두 빈손으로 돌아갔다.





주변 사람들을 모두 돌려보내고 집안의 물건들을 하나하나 정리하던 중 책상 구석에 놓인 고인의 유서를 발견하였다.
유서를 읽어보니 가족, 친척이 없는 외로움과 우울함, 믿고 살아온 친한 언니에게 배신당한 내용, 반려견을 안락사 시켜 본인과 함께 화장시켜달라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하지만 안타까운 사실은 고인이 절박한 심정으로 이 유서를 작성하였겠지만 사실상 고인의 유서를 읽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고 유서의 내용을 그대로 이행해줄 수 있는 사람 또한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이었다.
의뢰인이나 관리사무소는 고인으로 인하여 피해를 본 입장이고 반려견마저 나보고 알아서 처리하라고 요구한 상황인데 고인의 유서에 대하여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는 것은 기정사실일 것이 당연하고 솔직히 나조차도 반려견을 안락사 시켜서 화장시킬 수 있는 상황도 능력도 되지 않았다.

3일간의 유품정리 기간 동안 고인의 친구, 지인 중 단 한 명이라도 찾아왔었더라면 유서를 전달할 수 있었을 터인데 현장에는 단 한 명도 찾아오지를 않았다.​
결국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고인의 유서를 읽은 사람은 여전히 나 혼자밖에 없다.

반려견은 친척분이 농장에 울타리를 만들어서 키웠는데 매일 낑낑대더니 그 해 겨울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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